치매환자를 위한 의사결정지원을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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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환자를 위한 의사결정지원을 다시 생각하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철웅
우리 사회의 고령화 진행 속도가 무서울 정도이다. 2018년 인구의 14%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인 고령사회로 이미 진입하였고, 2026년에는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더불어 2010년 47만 명 수준이던 치매환자가 2020년에는 84만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고령인구의 급증, 치매환자의 급증은 사회적 요인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결혼, 아동 양육이 힘든 사회환경, 즉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과다한 교육열, 아이들 사이에서조차 만연한 왕따와 학교폭력, 취업, 주택, 직장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연한 과열된 경쟁을 고려하지 않으면 설명할 방법도 없고, 해결할 방법도 없다. 자녀출산에 금전을 지급하거나 다른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는 것으로는 결코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 치매환자의 급증 역시 노인 세대를 소외시키고, 그들의 문화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사회환경을 도외시하고는 설명할 방법도, 해결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어떤 때도 지금처럼 노인의 가치관과 문화를 경시하는 시절이 없었다. 이런 사회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좋은 치매치료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도박에 가까운 일이다.
내 부모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면, 내 배우자가 치매진단을 받았다면, 그 시점은 그동안 그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나와 가족들이 어떤 소홀함이 있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치매도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족이 낫기 어려운 질병에 걸렸을 때 우리는 그들을 충분히 쉬게 한다. 쉰다는 것은 몸을 쉬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본인이 좋아 하는 일에 더 집중하게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도록 하고, 즐거운 일을 하도록 하며, 삶에 새로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지원한다. 치매에 걸린 부모나 배우자에게도 똑 같이 이런 자세를 취해야 한다.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배제하고 어린애처럼 대하는 것은 매우 비인간적인 처우이다. 치매진단을 받았을수록 더 운동을 권하고, 스트레스를 수반하는 일보다는 잘 할 수 있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배려하고, 주변사람들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치매 진단을 받은 부모나 배우자가 겪었지만 나와 가족은 알지 못했던 어려움을 공유하고, 위로하고 서로를 격려해야 할 때일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치매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존중”이라고 한다.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의사결정지원”이라고 한다. 치매환자를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에 입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동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우리와 더불어 같이 소통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것이 의사결정지원이다. 자기결정권의 존중과 의사결정지원은 치매환자만이 아니라 노인 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문화를 다시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 노인세대만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가장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문화를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예산배정의 1순위가 치매환자나 소외된 사회계층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기반의 형성에 투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약자, 소외된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 스스로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노인세대의 소외도 줄어들 것이다. 치매환자가 가족,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가족의 부담은 저절로 덜어질 것이다.
노인, 치매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시스템의 정착을 핵심에 두지 않는 치매환자에 대한 국가대책은 당사자를 위한 정책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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